하나님은 동물들이 종류대로 노아 앞으로 나오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이 동물들이 물이 땅을 덮을 동안에 먹을 양식도 모두 배에 실었어요.
이렇게 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다 구원하시려고 그 큰 배를 만들도록 하신 것이었어요. 이 모든 것이 실리자 방주의 문은 닫혔어요.
그리고 큰 비가 내렸어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새와 동물과 사람들은 물 속에서 결국 숨을 쉬지 못해 죽고 말았어요.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세기 7장 22절 말씀
사람은 밥은 먹지 않아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어요. 모세는 40일간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어요. 전도사님도 7일간 금식을 해 보았어요. 힘들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숨을 안 쉬고는 단 3분밖에는 버티지 못해요. 홍수로 심판하실 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은 방주 안에 있는 사람뿐이었어요.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것이어요.
방주는 교회와 닮았어요. 방주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듯이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2.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드리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예요.
일 년간이나 물이 지면을 덮고 있었어요. 노아와 그 가족은 불편한 배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땅을 밟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드디어 물이 말랐어요. 마른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어요. 노아와 그 가족은 배에서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어요.
신선한 과일도 먹고, 땅위도 막 뛰어다니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가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어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예물도 하나님께 드렸어요. 전 지구에 7쌍 밖에 남지 않은 짐승과 새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것이어요.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세기 8장 20절 말씀
지구상에는 멸종위기동물이 많아요. 특히 독수리 같은 새는 전 세계에 2만 마리만 남았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 243호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어요.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잡거나 기를 수 없도록 했어요. 걸리면 즉시 감옥에 가게 되요. 그런데 노아는 천연기념물보다 수천 배나 희귀한 동물과 새를 하나님께 드린 거예요.
우리도 노아와 같아야 해요. 우리의 가장 좋은 시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가 되어야 해요.
3. 일곱 색깔 무지개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소중한 시간과 귀중한 예물을 예배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면서 받으셨어요. 그리고 축복과 약속을 해 주셨어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축복해 주셨어요. 그리고 약속도 하나 해 주셨어요. 물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이었어요.
그 증거로 하늘의 무지개를 보여주셨어요. 이렇게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은 때는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때였어요. 그럼 예배는 어떤 시간일까요?
첫째, 예배는 우리의 영혼이 숨을 쉬는 시간이어요. 숨을 못 쉬면 죽듯이 우리도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우리 영혼도 결국 죽게 되고 말아요.
둘째, 예배는 우리 영혼이 밥을 먹는 시간이어요. 편식을 하고 밥을 잘 안 먹는 어린이는 병에 걸리기 쉬어요. 밥 잘 먹고 반찬도 골고루 먹는 어린이는 건강할 수 있어요.
예배 시간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는 시간이어요. 말씀을 먹으면서 우리의 믿음도, 영혼도 건강하게 쑥쑥 자라나게 되는 거예요.
셋째,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시간이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약속하시는 시간이어요.
노아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무지개를 보여주셨어요. 우리도 예배할 때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는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이어요.
우리도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어린이가 되기로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듬뿍 받는 어린이가 다 되시기를 바래요.
요절: 내가 내 언약의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